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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

어재연 장군기의 귀환

나목 2007. 10. 23. 09:12

신미양요 발발 이틀 째인 1871년 6월11일. 어재연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은 강화도 광성진에서 로저스 제독의 미 해군과 전투를 벌였다.

함포사격으로 해안을 초토화한 뒤 진격해 오는 미 해군에 조선군 600여 명은 옥쇄작전으로 항전했다. 육박전을 벌이기 위해 돌진하는 조선군의 뒤에는 어재연 장군의 장수기가 휘날렸다.

결과는 참혹했다. 조선군 사망자는 어재연 장군과 백의종군한 아우 어재순을 포함해 350여 명, 부상자는 20명에 달했다. 반면 미군은 전사자 3명, 부상자 10명에 불과했다. 100대 1의 일방적인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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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시간 전쟁(신미양요의 미국측 명칭)'을 치른 미군은 장수기를 내리고 성조기를 올렸다. 조선군의 옥쇄를 지켜본 장수기는 미군의 전리품이 된 채 미 해군사관학교박물관 유리케이스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그러나 22일 어재연 장군과 조선수비군의 한이 맺힌 장수기가 136년 만에 고국 하늘 아래 펼쳐졌다.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은 미 해사박물관과 장기대여 협정을 맺고 22일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어재연 장수기의 귀환을 축하하는 기념식을 개최했다.

공개된 장수기는 가로 4.15m, 세로4.35m의 삼베 재질로 비교적 양호한 상태였으나 오른쪽 하단에 잘려나간 자국이 남아있었다. 미 해군이 관례에 따라 군기의 일부를 잘라 전리품으로 나눠가진 흔적이었다.

김원모 단국대 명예교수는 장수기 귀환의 의미에 대해 "당시 조선은 국기가 없었기 때문에 장수기는 곧 조선의 국기이자 주권의 상징이었다"며 "비록 대여 형식지만 장수기가 돌아온 것은 주권을 되찾아온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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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 참석한 어재연 장군의 4대손 어재선(56) 씨는 "할아버지 두 분(어재연.어재순)이 이 깃발 아래서 돌아가셨다. 100년 뒤 후손이 그 깃발을 다시 보는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며 감회를 표현했다.

어씨는 특히 작년 작고한 아버지 어윤원 씨가 장군기를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어윤원 씨는 미 해사박물관을 방문해 어재연 장군기의 반환을 요청했으며 매년 강화도에서 광성제를 지내왔다.

어재선 씨는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비군의 용기를 이해해야 한다"며 "미국에서는 '48시간 전쟁'으로 부른다지만 광성진 전투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강화도와 일대 해역을 방어하는 김기남 해병2사단장과 김용환 인천해역방어사령관, 해병대 장병들이 참석했다.

김기남 사단장은 "어재연 장군기를 통해 죽음을 무릅쓰고 외침을 막는 것이 군인의 사명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며 "선배들이 어떻게 목숨을 바쳤는지 알 수 있도록 해병 장병들에게 꼭 장군기를 관람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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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과거로 부터의 단절은 이런 것이 아닐까?

고작 136년 전 일이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겪으신 일이다.



그렇게 가깝게 느끼는 내 나이 또래의 아이가 또 얼마나 있을까
앞서 글에 쓰여있듯이 국기를 대신해 걸려 있던 장군기는 전투에서 패하면서 강탈되었고

저 장군기 아래에서 350여 해군 선배님들 쓰러져갔다.


전투에서 군기(軍旗)의 역활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아마 들물 것 같다.

그것은 국가의 상징이며 해당 군대의 아이덴티티이며 부대원들을 그 깃발 아래에 집중시켜 하나게 되게 만들었다.
황후화나 영웅 같은 엄청난 엑스트라를 동원한 중국의 영화를 보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고 그 사람들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깃발은 부적이기도 하다.

사방에서 황 적 청 흑 백 색으로 휘날리는 깃발은 전쟁의 두려움을 잊게하고, 가족에 그리움을 잊게하고 움켜진 창검에 힘을 불어넣어 그들을 사지로 밀어넣는다.


이 모두 깃발의 힘이다.

그런데 이런 깃발을 빼았겼다.


전투에서 패했다.

무엇보다, 무엇보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최선을 다 했지만 학살에 가까운 결과밖에 얻지 못했다.


그들의 피는 분명 뜨거웠다.


그래서 내가 이리도 억울한가보다.


평화는 힘이 아니고선 지켜질 수 없다.


다시는 치옥과 오욕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난 대한민국이 조금 더 못살아도 좋으니 조금 더 강한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가 주변국들의 눈치를 살피며 하고 싶은 말.   더 이상 참지 않았으면 좋겠다.


강한 군대의 보호를 받는 국민 역시 강한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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