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많은 사람들이 추위에 떨었다.
그렇지만 기꺼이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 또한 역시 역사적 사명감과 소명감에 그 자리를 함께 지키고 있었다.
허나 시위를 마치고 친구 방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님의 조소를 들으며, 보며, 되새기며 이 글을 쓴다.
내가 시위에 나가는 까닭은 대한민국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 감염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국토를 대운하로 파헤치자고 했기 때문이 아니다.
의료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하자고 했기 때문이 아니다.
금산분리를 후퇴시키겠다고 했기 때문이 아니다.
각종 여러 사회기반시설들을 민영화 하자고 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문제삼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단지 그가 행하고자 하는 일들이 찬반을 아우르는 폭 넓은 전문가들의 자문이나 여론의 수렴을 거치지 않고
개인의 독단에 가까운 판단으로 거침없이 진행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지난 미대선에서 부시와 고어의 선거를 기억하는가.
유권자의 실질 득표는 고어가 더 많았지만 대의원 수에서 부시가 더 많았기에 구설수에 올랐다.
누가 진정한 당선자인지 가리는 것에 대한 말이 많았다.
그 때 국론이 분열되는 것은 미국을 위한 길이 아니라는 고어의 포기 연설을 통해
부시는 안정적으로 대통령으로 정권을 시작할 수 있었다.
고어가 쉽게 대선 패배를 승복한 것은 미국의 국론이 분열되어 미국이 약화되는 것을 진심으로 염려했기 보다
당시 미국민의 여론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당시 여론은. ‘미국은 시스템에 의한 통치가 되는 나라라서 누가 최고 권력자가 되든 결과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니 괜히 시끄럽게 일을 크게 만들지 말라.’였다.
물론 미국도 부시정권이 들어서면 꽤나 후회를 한건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행정의 기본은 절차와 방법이라고 알고 있다.
효율성보다 공익을 더 우선해야하기 때문에 과정에서 실수를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최대한의 검토를 통해 선례를 만들고 그 선례에 따라 일을 진행하는 것으로 배웠으며 그렇게 행정을 집행했었다.
그래서 난 국가의 통치권이 인치(人治)에 의한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에 의한 시스템적 통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그런 생각이 무너졌다. 내가 퍽 순진한 구석이 있었나보다.
난 내가 원하고 내가 바라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내가 바라는 세상이 상식에서 크게 어긋나는 세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난 그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바랄뿐이다.
내 상식과 내 의지에서 벗어나 나를 괴롭히는 이 작금의 현실에 숨죽여 산다는 것은
결국 내 삶의 결정권을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내가 원치 않는 방식으로 짜놓은 게임속의 폰(pawn)이 될 것이 자명한 상황 속에서 판을 바꾸기 위해 시위에 참가한다.
내가 시위에 참여하여 궁극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것은 미국산 쇠고기의 고시철회가 뿐만이 아니다.
미우나 고우나 국민들의 투표로 뽑힌 이명박을 쫒아내고자 함도 아니다.
시늉만 형식만 절차와 방법에 의해 끼워 맞추고자 하는 것이 아닌
실질적인 안정성과 합목적성에 부합하는 시스템에 의한 대한민국의 통치에 대한 룰을 정하고 싶음에 뜻이 있다.
그러한 고로, 나는 이번 주말에도 시청에 설 것이다.
'긁적끄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돈키호테. (0) | 2008.07.23 |
---|---|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그리고 자유와 평등. (2) | 2008.07.17 |
편지.. (0) | 2008.04.23 |
공부를 열심히 하는건 아닌데... (0) | 2008.04.17 |
우주인. (0) | 2008.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