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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수사 받는다면] ⑤구속될때
중병에 의사 찾듯 전문가 불러 반대증거 확보 총력을
 
몇 해전 길에서 술에 취한 여성을 부축해 깰 때까지 지켜본 뒤 명함을 주고 귀가한 카드회사 직원 A씨는 성폭행 미수 혐의로 다음날 경찰에 불려갔다. 그는 어떠한 성 접촉 시도도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경찰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의 진술에 근거해 사건을 구성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는 검찰에서도 같은 주장을 반복했지만 결국 구속됐다.

구속 후 변호사를 만난 A씨는 사건 경위를 설명하며 무혐의를 주장했지만 이내 딜레마에 빠졌다. 억울하다는 자신의 누명을 풀기 위해선 반대 증거를 내놓고 재판에서 무죄를 입증해야 하지만 확정 판결까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2년여가 걸리는 시간이 문제였다. 구속 상태이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소송 비용 등 경제적 부담도 고려해야 했다. 결국 수사기관의 혐의 내용을 수용한 A씨는 피해자와 합의한 뒤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구속(拘束)은 도주 및 증거인멸을 막고 형사소송의 진행을 위해 피의자의 신체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는 형사소송 절차의 한 과정이다. 따라서 구속이 곧 처벌이라든가 유죄 선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구속이 갖고 있는 강력한 효과와 사회적 상징성 그리고 법 전문가인 검사와 판사가 한 차례씩 사법적 고려와 판단을 했다는 점 때문에 일반인의 뇌리에 '구속=처벌'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A씨의 사례처럼 구속이 되면 재판에서 잘잘못을 따지기 앞서 사회 생활 보호 문제로 현실적 타협을 하는 경우가 많다. 구속은 한 사람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중대 사건이다. 검사 출신 P변호사는 "구속이 되면 이전 조사과정에서 피조사자가 막연하게나마 가졌던 '수사기관과 동등한 위치에서 조사받아야 한다'는 의식이 사라진다"며 "이 때부터 사실상 피해자의 말이 조사 과정 내내 '법'이 되고 피의자들은 대개 무장해제됐다는 심리적 공황에 빠지곤 한다"고 말했다. 빨리 조사받고 수사기관에서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강할수록 심리적 타격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A씨가 구속을 면할 방법은 없었을까. 검사 출신 L변호사는 "A씨는 피해자의 주장을 반박할 반대 증거를 거의 제시하지 못한 채 결백 주장만 반복했다"고 지적했다. 경찰서에서 조사받는 그가 현장 주변에서 반대 증거를 수집할 수 있는 방법은 관련 사건에 경험이 많은 사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길 뿐이다. 하지만 A씨는 구속이 결정된 뒤에서야 변호사와 처음 접견했다.

'당신이 수사받는다면'시리즈가 나간 뒤 일부 네티즌은 "유전무죄란 말인가. 변호사 없이 수사를 받는 방법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지방의 한 검사는 "상식선상에서 죄가 안된다고 생각하는 일도 법 전문가의 관점에선 사건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사건 관계자들은 자기 관점에서 사건을 해석하는 성향이 강해 결백을 주장한다"며" 하지만 그것이 다른 관계인(피해자)의 법익(法益)과 충돌하기 때문에 법률적 관점에서 유죄 여부를 따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듯 수사는 상식 관점이 아니라 법적 시각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다. 사건의 계기가 된 또 다른 당사자(피해자)가 강력하게 피의자에게 불리한 주장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방어할 반대 증거와 그 효용성에 대해 상의할 법률 전문가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검사도"몸이 아플 때 의사의 진찰이 없으면 육체적 생명이 끊기고 피의자가 됐을 때 변호사 선임을 제때 하지 않으면 사회적 생명이 끊기게 된다"며 "구속이 될지 여부를 계산하다 구속이 임박하거나 결정난 순간에 변호사를 부르면 이미 늦는다"고 말했다. K변호사는 "소환 때든 구속 절차가 진행 중일 때든 어느 시점에 사건을 맡아도 수임료는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금태섭 검사도 한 신문에 실린 기고에서"직업적인 범죄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수사를 받는 것은 일생에 몇 번 없는 일이다. 중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해 훌륭한 변호인을 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사는 당사자와 상대방 그리고 수사기관이 관계된다. 삼자(三者)의 시각이 엇갈리고 마찰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되도록 조사 초기부터 법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강조점이다.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법원에서 발부 여부를 판단한다. 사안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인 형사사건은 3 ̄4시간이면 발부 여부가 결정된다. 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이 시간에도 반대 증거를 찾는 노력을 계속해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를 '구속 전 피의자 신문(영장실질심사)'때 제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영장실질심사제도는 수사기관이 청구한 구속영장의 요건이 적법한지를 가리는 제도로 모든 사건에 적용된다.

실질심사를 거쳐 구속영장이 발부되더라도 반대 증거가 확보돼 수사기관의 혐의에 논란의 여지가 생기면 구속적부심을 신청해야 한다. 적부심은 구속된 피의자에 대해 법원이 구속의 적법성과 필요성을 심사해 타당성이 없으면 피의자를 석방하는 제도다.

S변호사는 "현실 여건상 영장실질심사나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할 경우 새로운 반박 자료가 없는 한 구속집행을 번복하기는 힘들지만 이런 노력조차 안하는 피의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다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장실질심사와 구속적부심사가 모두 기각됐다면 피의자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P변호사는"구속이 확정되면 피의자는 재판을 통해 새로운 증거나 정황을 제시해 무죄판결을 받는 노력을 계속하느냐, 아니면 수사기관의 혐의 내용을 수용해 정상참작을 기대하느냐 두가지 방안 가운데 선택을 해야 한다"며 "변호사는 의뢰인의 입장에서 어떤 판단이 도움이 되는지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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