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미양요 발발 이틀 째인 1871년 6월11일. 어재연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은 강화도 광성진에서 로저스 제독의 미 해군과 전투를 벌였다. 함포사격으로 해안을 초토화한 뒤 진격해 오는 미 해군에 조선군 600여 명은 옥쇄작전으로 항전했다. 육박전을 벌이기 위해 돌진하는 조선군의 뒤에는 어재연 장군의 장수기가 휘날렸다. 결과는 참혹했다. 조선군 사망자는 어재연 장군과 백의종군한 아우 어재순을 포함해 350여 명, 부상자는 20명에 달했다. 반면 미군은 전사자 3명, 부상자 10명에 불과했다. 100대 1의 일방적인 전투였다. '48시간 전쟁(신미양요의 미국측 명칭)'을 치른 미군은 장수기를 내리고 성조기를 올렸다. 조선군의 옥쇄를 지켜본 장수기는 미군의 전리품이 된 채 미 해군사관학교박물관 유리케이스에 갇히..
★/(感)
2007. 10. 23. 09:12